현대 야구에서도 투·타 겸업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며 메이저리그 역사를 바꿔놓은 오타니 쇼헤이(31·LA 다저스)는 지난해 타격에만 전념했다. 경력의 기조가 바뀐 것은 아니었다. 수술로 인한 강제 휴식이었다.
오타니는 메이저리그 데뷔 시즌이었던 2018년 한 차례 팔꿈치인대재건수술(토미존 서저리)을 받았다. 이 때문에 2019년에는 투수로 등판하지 못했다. 오른쪽 팔꿈치 수술이라 좌타자인 오타니는 계속 타석에 들어설 수 있었지만, "역시 투·타 겸업은 불가능하다"는 비아냥이 나오던 시기다. 그런데 오타니는 2020년 예열을 거쳐 2021년부터 본격적인 투·타 겸업을 신화를 써내려갔다.
리그를 대표하는 홈런 타자로 발돋움한 오타니가 마운드에서 위력적인 구위까지 보여줬다. 투수에 전념한다면 사이영상에도 도전할 수 있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메이저리그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활약이었다. 오타니는 2021년 투수로 23경기에 나가 평균자책점 3.13, 그리고 2022년에는 28경기에서 규정이닝을 채우며(166이닝) 평균자책점 2.33을 기록했다. 2022년에는 사이영상 투표에서도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런 오타니는 투·타 겸업의 위기를 다시 맞이했다. 2023년 시즌 막판 팔꿈치 인대의 손상이 발견되며 다시 수술대에 오른 것이다. 1년 넘게 재활을 했고, 지난해는 공을 던지지 못했다. 올해 다시 마운드에 오른 오타니는 조심스럽게 이닝을 불려나가고 있다. 그런데 이전보다 공이 더 좋아졌다. 수술로 팔꿈치 상태가 말끔해졌다. 오타니 투구의 전성기가 지금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타자로도 뛰어야 하는 오타니는 마이너리그에 가 재활 등판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메이저리그에서 1이닝부터 시작, 천천히 투구 이닝을 늘려가고 있다. 7일(한국시간) 세인트루이스와 경기에서는 4이닝을 던지며 삼진 8개를 잡아내는 등 위력적인 구위를 보여줬다. 8월을 거쳐 9월이 되면 5이닝 이상을 정상적으로 던지는 선발 투수가 될 수 있을 전망이다.
올해 투수로는 8경기에 나가 19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2.37을 기록 중이다. 표본이 많지는 않지만 리그 평균과 견준 조정 평균자책점에서는 179를 기록하며 개인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수비무관 평균자책점(FIP)은 평균자책점보다 더 낮은 1.95에 불과하다. 볼넷 개수도 많지 않은데 9이닝당 탈삼진 개수는 11.8개에 이른다. 아직 예열 상태인데도 이렇다. 오타니의 괴력을 실감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패스트볼 구속이 올랐다. 오타니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가장 빨랐던 해는 2022년으로 당시 97.3마일(약 156.6㎞)을 기록했다. 하지만 올해는 98.2마일(158㎞)을 기록 중이다. 물론 아직 이닝 소화가 많지 않은 점도 있지만, 나이를 세 살이나 더 먹었는데도 구속이 역주행하는 것은 분명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스위퍼나 슬라이더 등 다른 구종의 구속 또한 죄다 오름세다.
구속뿐만 아니라 세부 지표도 더 나아졌다. 메이저리그 데뷔 후 오타니의 포심패스트볼 분당 회전 수(RPM)는 2200~2250회 수준이었다. 부상 직전인 2023년은 2259회였다. 그런데 올해는 RPM이 2442회까지 올랐다. 2023년과 비교하면 거의 200회가 올랐다. 물론 RPM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지표는 아니지만, 높으면 특별히 나쁠 것은 없다. 오타니가 재활을 잘했고, 또 1년을 쉬면서 뭔가의 실마리를 찾아간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실제 오타니의 패스트볼은 이전보다 덜 떨어지고 있다. 모든 공은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 손을 떠난 뒤로는 계속 조금씩 떨어진다. 이 중력을 거스르면 거스를수록 타자의 눈에는 떠오르는 것처럼 느껴져 더 위력적이다. 2023년 오타니의 패스트볼은 평균 15.1인치(약 38.4㎝) 떨어졌는데, 올해는 13.8인치(35.1㎝)만 떨어지고 있다. 타자로서는 공이 끝까지 살아들어 오는 것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올해 완벽하게 재활을 마무리하면, 내년에는 예전처럼 일주일에 한 번 정상적으로 로테이션을 소화하는 선발이 될 전망이다. 요즘 사이영상 투표에서 예전만큼 이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오타니가 규정이닝을 채울 수 있다면 유력한 사이영상 후보로도 나설 수 있다. 지금 투구 내용은 충분히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역대 투수로 MVP와 사이영상을 동시 석권한 사례는 있었다. 저스틴 벌랜더나 클레이튼 커쇼와 같은 선수들이다. 투수 MVP는 극히 드물다. 하지만 오타니는 또 다르다. 타자로 MVP, 투수로 사이영상에 도전한다. 이런 선수는 메이저리그 역사에 없었다. 오타니 또한 투수로서의 생명이 얼마나 남았을지는 알 수 없다. 오타니도 한 번 더 수술대에 오르면 투수는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2026년은 역사적인 대업의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