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삼성의 역사적 선택… 이런 압도적 홈런왕 있었나, 이승엽-최형우 이름을 소환하다
시계를 1년 전으로 되돌려보면 삼성은 큰 고민을 안고 있었다. 정규시즌 2위로 포스트시즌 진출 확률을 높여가며 신바람을 냈지만, 이 성적에 만족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더 높은 곳을 향한 중요 키워드인 외국인 타자 하나가 말썽이었다.
삼성이 데이비드 맥키넌을 퇴출시키고 데려온 루벤 카데나스(28·키움)의 몸 상태가 문제였다. 지금은 카디네스라는 등록명으로 키움에서 뛰고 있는 '당시의' 카데나스는 반 시즌도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삼성이 총액 47만7000달러를 들여 모셔온 몸이었다. 자신감이 붙은 삼성 대포 야구의 화룡점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 입단 초기에는 구단이 기대했던 장타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팠다.
허리 쪽에 통증이 있었고, 선수의 말과 트레이닝파트의 말이 미묘하게 엇갈리기도 했다. 그래서 태업 논란까지 불거졌다. 난감한 일이었다. 삼성은 카데나스를 계속 기다리며 안고 갈지, 아니면 또 다시 외국인 선수를 교체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했다. 새 외국인 선수를 포스트시즌에 쓰려면 8월 15일까지 영입을 완료해야 했다. 카데나스에게 들인 돈은 둘째치고, 새 외국인을 찾을 시간적 여유까지 부족했다. 리그 전체의 관심사였다.
삼성은 결단을 내렸다. 최대한 서둘러 새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기로 했다. 그렇게 삼성 유니폼을 입은 타자가 르윈 디아즈(29)다. 장점은 분명히 가지고 있는데, 전체적인 프로필이나 체격 등에서 카데나스보다는 파워가 약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일단 건강하게 뛸 수 있는 외국인 타자 하나를 구했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았다는 평가까지 있었다. 그런데 그 삼성의 결단은, 구단 역사를 바꾸는 하나의 거대한 물줄기가 됐다. 대성공이었다.
디아즈는 지난해 입단 후 정규시즌 잔여경기 29경기에서 타율 0.282, 7홈런, 19타점을 기록하며 리그에 빠르게 적응했다. 장타율은 0.518로 수준급이었다. 삼성이 한숨을 돌린 순간이었다. 여기에 포스트시즌(플레이오프·한국시리즈)에서만 홈런 5방을 몰아치며 대활약했다. 한숨을 돌린 것을 넘어, 재계약에 대한 확신을 주는 활약이었다. 비록 삼성은 한국시리즈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지만 적어도 2025년도 외국인 타자 구성의 고민은 덜었다. 이견 없이 재계약했다.
그런 디아즈는 올해 막강한 홈런 파워를 뽐내며 홈런왕을 사실상 확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디아즈는 6일까지 시즌 103경기에 나가 타율 0.307, 36홈런, 107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984의 대활약으로 삼성 타선을 이끌고 있다. 리그 역사상 이렇게 빨리 홈런왕을 사실상 확정한 선수는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홈런 부문 2위인 패트릭 위즈덤(KIA·22개)과 무려 14개 차이가 난다. KBO리그 역사상 홈런 1·2위의 차이가 14개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디아즈의 괴력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6일 인천 SSG전에서도 비록 팀이 패하기는 했지만 솔로홈런 두 방을 때리며 여전한 홈런 파워를 과시했다. 팀이 1-0으로 앞선 6회에는 상대 선발 드류 앤더슨을 상대로 우월 솔로홈런을 쳤다. 앤더슨의 주무기인 커브가 가운데 몰리자 가볍게 스윙을 돌려 맞는 순간 직감할 수 있는 홈런을 쳤다. 팀이 3-5로 뒤진 8회에는 상대 셋업맨 이로운의 체인지업을 받아쳐 또 가운데 담장을 넘겼다. 앤더슨과 이로운이라는 올 시즌 리그 정상급 투수들의 결정구들을 받아쳐 홈런 2개를 추가했다. 디아즈의 올해 성적이 운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하루였다.
팀 성적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기는 하지만 디아즈 개인적으로 보면 삼성 구단 역사를 바꿔놓을 페이스로 달려가고 있다. 올해 건강하게 시즌을 보내고 있는 디아즈는 현재 페이스라면 시즌 50홈런 달성이 가능하다. KBO리그 역대 최고의 공격 팀이라는 평가를 받는 삼성의 역사에서도 50홈런은 이승엽(2003년 56개·1999년 54개)만이 가지고 있는 훈장이다. 역대 3위 기록은 2015년 야마이코 나바로의 48개다. 구단 역대 3위 기록은 물론, 외국인 선수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타점 또한 150타점 페이스다. 삼성 구단 역사상 한 시즌 최다 타점은 2016년 최형우(현 KIA)와 2003년 이승엽이 보유한 144타점이다. 아직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지금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이 대기록에도 도전할 수 있을 전망이다. 1년 전 삼성의 선택은 옳았고, 어쩌면 역사상 선택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