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도전’ 심준석-‘KBO리그 전체 1순위’ 김서현’의 엇갈린 행보… 3년 만에 김서현의 선택이 옳았음이 증명됐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고교야구 최대어는 서울 덕수고 우완투수 심준석(21)이었다. 공식전 최고구속 시속 157km, 연습경기에서 나온 비공식 기록으론 시속 160km을 기록할 정도로 또래 친구들을 압도하는 강력한 구속과 구위를 보여줬다. 2023 KBO 신인 드래프트는 ‘심준석 드래프트’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였지만, 심준석은 KBO리그 진출이 아닌 미국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하며 KBO 신인 드래프트에 불참했다. 2023년 1월 심준석은 계약금 75만달러를 받고 피츠버그 파이리츠 입단을 확정지었다.
심준석이 불참한 2023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의 영광은 서울고 출신 우완 김서현이 차지했다. 고교 3학년 때 시속 157km의 빠른 공을 던지며 심준석과 고교 투수 NO.1을 다투던 김서현은 전체 1순위 지명권을 갖고 있던 한화의 지명을 받아 주황색 유니폼을 받아들었다.
두 선수의 선택이 엇갈린 후 약 3년이 흘렀다. 현재 심준석과 김서현의 처지는 ‘천양지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서현은 한화 입단 후 데뷔 시즌과 2년차 전반기까지는 고질적인 제구 불안으로 1,2군을 오가야했다. 그러나 지난해 후반기 투수 조련에는 일가견이 있는 양상문 투수코치 부임 후 눈에 띄게 제구가 안정되기 시작했고, 불펜의 필승조 일원으로 자리잡았다.
3년차인 올 시즌 초반 기존 마무리 주현상이 난조를 보이자 김경문 감독은 팀 내 불펜 자원 중 가장 강력한 공을 뿌리는 김서현을 마무리로 승격시켰다. 시속 150km 중후반을 오가는데다 움직임이 심한 포심 패스트볼에 결정구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앞세운 김서현은 강력한 구위로 타자들을 돌려세우며 명실상부 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성장했다. 만년 하위권에 머물던 한화의 고공행진을 이끄는 주역 중 하나로 활약하고 있는 김서현은 올스타 팬투표에서 전체 1위의 영광을 차지했다.
세부 기록을 뜯어봐도 김서현의 성장세는 놀랍다. 21일 기준 22세이브로 이 부문 4위에 올라있고, 평균자책점은 1.51로 각팀 주전 마무리 중 조병현(SSG·1.50)에 이어 두 번째다. 블론 세이브도 2개에 불과하다. 41.2이닝을 던지며 51개의 탈삼진을 솎아냈고, 20개의 볼넷을 내줬다. 9이닝 당 볼넷 개수는 4.32개로 아직 제구력이 뛰어나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데뷔 첫해 9.27개, 지난해 7.51개에 달했음을 감안하면 상전벽해 수준이다. 김서현이 마무리에서 안정적으로 팀 승리를 지켜준 덕분에 한화는 1992년 이후 33년 만에 전반기를 1위로 마쳤고, 2위와 안정적인 차이로 선두를 달리고 있어 2006년 이후 19년 만의 한국시리즈 진출이 유력한 상황이다.
반면 심준석은 마이너리그 레벨 중 가장 하위리그라고 할 수 있는 루키리그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7월 피츠버그가 브라이언 데 라 크루즈를 영입하는 트레이드 칩에 포함돼 마이애미 말린스로 트레이드된 심준석은 팀 내 유망주 순위에서도 30위 밖으로 벗어나있다. 마이애미 말린스 산하 루키팀 FCL 말린스에서 뛰고 있는 심준석의 올 시즌 성적은 12경기 등판 12.1이닝 0승3패 평균자책점 10.95에 불과하다.
세부 기록을 뜯어보면 더 참담하다. 12.1이닝을 던지며 내준 볼넷이 무려 21개에 몸에 맞는 공도 7개를 허용했다. 구위 자체는 강력해서 피안타율은 0.150에 불과하지만, 거저로 출루시켜주는 경우가 많다보니 안정적인 투구가 불가능한 상태다. 최근 등판이었던 지난 20일(한국시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산하 루키팀인 FCL 카디널스와의 경기에서도 1이닝 동안 안타는 맞지 않았지만, 볼넷 4개에 몸에 맞는 공 1개, 폭투 2개로 3실점하며 패전투수가 됐다. 루키리그 수준에서도 이 정도 투구내용이면 빅리그 승격은 그야말로 언감생심이다.
류선규 전 SSG 단장은 3년 만에 처지가 180도 달라진 두 선수 사례를 보며 “고교 졸업 후 곧바로 빅리그 도전하기 보다는 KBO리그에서 실력과 커리어를 쌓은 이후 빅리그 진출을 모색하는 게 메이저리그 안착 가능성은 더 높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투수 중 아마추어 신분으로 빅리그에 도전해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케이스는 ‘코리안 특급’ 박찬호, ‘BK’ 김병현을 비롯해 김선우, 서재응 등 빅리그 진출 1세대 정도밖에 없다. 이후 진출한 선수들은 대부분 실패했다.
반면 KBO리그를 평정한 뒤 빅리그에 도전해 성공한 사례가 최근 들어 더 많이 나오고 있다. 류현진(한화)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절인 2019년 평균자책점 1위(2.32) 및 사이영상 투표 2위에 오르는 등 메이저리그 11년 동안 78승을 거두며 최고의 선발투수로 활약했다. 김광현(SSG), 오승환(삼성)도 KBO리그에서 최고의 투수로 군림한 이후 메이저리그로 진출해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류 전 단장은 “KBO리그는 지명 순위에 상관없이 모든 신인 선수들에게 동등한 수준의 코칭을 제공한다. 반면 100마일을 던지는 중남미 선수들이 득실대는 미국 마이너리그에서는 그렇진 못하다. 게다가 고교 졸업 후 아직 자아가 형성되지 않은 어린 선수들이 이역만리 타지에서 외로운 생활을 견디며 치열한 경쟁을 뚫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계약금 100만달러 이상을 받으면 메이저리그 구단들도 투자한 게 있으니 잘 키우려고 하지만, 100만달러 이하면 메이저리그 구단 입장에선 ‘안 되면 말고’ 식의 행보가 많다”라고 덧붙였다. 2023년 보스턴 레드삭스와 30만달러에 계약한 서울고 출신의 우완 이찬솔(20)도 루키 리그를 벗어나지 못하고 부상과 기량 성장이 정체되며 입단 2년이 되지 않아 방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