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성 골드글러브+실버슬러서 동시 후보!
김하성(28‧샌디에이고)은 KBO리그를 대표하는 유격수였다. 공격과 수비, 그리고 주루까지 모든 능력을 두루 갖췄다는 찬사가 이어졌다. KBO리그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2020년 138경기에서 타율 3할(.306), 30홈런, 100타점(109타점), 100득점(111득점), 그리고 20도루 이상(23도루)을 모두 거머쥐었다. 경쟁할 선수가 없었다. 독보적이었다.
그 능력을 인정받아 2021년 시즌을 앞두고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 무대 진출에 성공했다. 샌디에이고와 4년 보장 2800만 달러, 5년 최대 3900만 달러에 계약했다. 다만 KBO리그에서 뛰던 선수가 두 단계 정도 레벨이 높은 메이저리그로 갈 때 받는 의구심을 다 피해가지는 못했다. "수비력이 떨어진다", "장타력이 떨어진다", "메이저리그에서 확실한 포지션이 없다" 등 온갖 물음표가 김하성의 이름을 따라다녔다.
첫 시즌에는 그런 회의적인 시선이 맞아 떨어지는 듯했다. 메이저리그 무대에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다. 수준 높은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공에 방망이가 더디게 돌았다. 김하성은 2021년 117경기에 나갔으나 타율 0.202에 그쳤다. 간신히 2할을 넘겼다. OPS(출루율+장타율)는 0.622였다. 기대에 못 미쳤다. 이 OPS는 여러 환경을 종합한 리그 평균보다 27%나 떨어지는 것이었다.
백업으로서의 생활이 쉽지 않았다. KBO리그에서는 매일 주전으로 경기에 나갔다. 메이저리그는 달랐다. 언제 경기에 나갈지 모르고, 어느 포지션에 들어갈지 몰랐다. 루틴이 달랐다. 김하성도 적응이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그 1년을 잘 돌아보며 약으로 삼았다. 그리고 2022년, 2023년으로 갈수록 더 나아진 활약을 펼쳤다. 이제는 리그에서도 주목하는 중앙 내야수로 거듭났다.
이를 상징하는 것이 연말 시상이다. 김하성은 지난 10월 19일(한국시간) 발표된 2023 롤링스 골드글러브 최종 후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것도 두 부문에서 이름을 새겼다. 2루수 부문, 그리고 지난해 신설된 유틸리티 부문에서 'TOP 3'에 올라 마지막 경쟁을 벌이고 있다.
김하성은 2022년 내셔널리그 골드글러브 유격수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2023년 수비 성적은 각종 지표에서 다 좋았다. 시즌 시작부터 끝까지 그랬다. 그래서 2023년 골드글러브 최종 후보 선정이야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다. 오히려 지금은 가장 강력한 수상후보로 손꼽힌다.
그런데 3일에는 다소 예상하지 못했던 또 하나의 낭보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실버슬러거다. 2021년 당시까지만 해도, 어쩌면 올 시즌 초반까지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 골드글러브 이어, 실버슬러거까지 최종후보… 겹경사 맞이한 김하성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3일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 각 부문별 실버슬러거 최종 후보를 발표했다. 골드글러브가 리그 최고의 수비수들에게 주어지는 시상이라면, 실버슬러거는 리그 최고의 방망이들이 자웅을 겨루는 무대다. 김하성은 내셔널리그 유틸리티 부문 최종 후보에 선정됐다. 무키 베츠(LA 다저스), 코디 벨린저(시카고 컵스), 스펜서 스티어(신시내티)와 마지막까지 경합한다.
김하성의 공격 생산력은 매년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렸다. 2021년 0.622에 불과했던 OPS는 지난해 0.708을 기록해 조정 OPS(OPS+)에서 평균 이상인 105로 올라왔다. 그리고 올해는 0.749의 OPS로 지난해보다 한결 더 나은 성적을 거뒀다. 올해 OPS+는 110이었다. 통계전문사이트 '팬그래프'가 집계한 조정득점생산력(wRC+)에서도 김하성의 성장을 엿볼 수 있다. 2021년 wRC+는 71이었지만, 지난해는 106으로 껑충 뛰었고 올해도 112를 기록했다. 리그 평균보다 더 나은 방망이가 됐다.
그럼에도 공격력 자체만 놓고 보면 더 나은 2루수들이 있었기에 실버슬러거에 대한 기대감이 크지는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신설된 유틸리티 부분이 하나의 기회였다. 최근 메이저리그는 여러 포지션, 특히 내‧외야를 오가는 선수들이 많아진 게 트렌드다. 이런 선수들을 위해 지난해부터 골드글러브와 실버슬러거 모두 유틸리티 부문이 신설됐다. 골드글러브는 유틸리티 선수들을 위해 따로 수비 공식을 산출하기도 한다.
김하성은 2루수 부문에서는 아지 알비스(애틀랜타), 루이스 아라에스(마이애미), 케텔 마르테(애라조나)에 밀려 입후보하지 못했다. 공격만 놓고 보면 김하성보다 더 나은 선수들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런데 김하성은 올해 2루와 3루, 그리고 유격수를 고루 본 덕에 유틸리티 입후보 자격이 생겼고, 결국 실버슬러거 최종 후보까지 오르는 의미 있는 업적을 이룰 수 있었다.
수상 가능성은 물론 낮다. 경쟁자들이 워낙 쟁쟁하다. 무키 베츠의 수상이 유력하다. 올해 원래 포지션인 우익수는 물론 2루와 유격수까지 소화하는 '만능'의 면모를 선보인 베츠는 시즌 152경기에서 타율 0.307, 39홈런, 107타점, OPS 0.987을 기록했다. 김하성과 생산력 차이가 꽤 난다. 베츠는 이미 6번의 골드글러브와 5번의 실버슬러거를 차지한 리그 최정상급 선수다. 올해 7번째 골드글러브와 6번째 실버슬러거를 노리고 있다. 공교롭게도 베츠는 골드글러브 유틸리티 부문에서도 김하성과 경쟁 중이다.
그 다음 순번인 코디 벨린저의 타격 성적도 좋다. 2019년 내셔널리그 최우수선수(MVP)였던 벨린저는 최근 부진에 허덕였다. 급기야 지난 시즌 후 LA 다저스로부터 방출 수모까지 겪으며 자존심을 구겼다. 하지만 올해 재기에 성공했다. 시즌 130경기에서 타율 0.307, 26홈런, 97타점, OPS 0.881로 반등했다. 올해 FA 시장 외야 최대어다.
스펜서 스티어도 뛰어난 시즌을 보냈다. 지난해 신시내티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스티어는 새롭게 개편된 신시내티 젊은 야수진을 이끄는 축이다. 올해 포수와 유격수, 그리고 중견수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소화하며 말 그대로 '유틸리티'의 모습을 보여줬다. 156경기에서 타율 0.271, 23홈런, 86타점, OPS 0.820을 기록하며 공격에서도 수훈을 세웠다.
실버슬러거 선정에도 현장 투표가 들어가기는 하지만, 세 선수의 공격 성적이 김하성보다 앞서는 건 사실이라 수상 가능성은 낮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실버슬러거 후보까지 올랐다는 건 공격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 김하성에게는 하나의 근사한 보상이 될 만하다. 한국인 선수 역사상 실버슬러거를 차지한 선수가 없다는 점도 특별한 점이 될 수 있다.
한국인 선수 역사상 실버슬러거에 가장 가까웠던 선수는 2013년 추신수(당시 신시내티)다. 추신수는 2013년 당시 154경기에서 타율 0.285, 출루율 0.423, 21홈런, 54타점, 20도루, 107득점, OPS 0.885의 대활약을 펼쳤다. 당시 내셔널리그 MVP 투표에서도 12위에 오를 정도의 호성적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실버슬러거 투표에서는 고배를 마셨다.
당시 추신수의 실버슬러거 탈락은 현지의 큰 논란거리가 됐다. 당시 내셔널리그 외야수 실버슬러거는 앤드루 매커친, 마이클 커다이어, 제이 브루스에게 돌아갔다. 그런데 매커친을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의 공격 성적은 추신수보다 나을 게 없었다. 실제 조정 OPS에서도 추신수가 145를 기록한 반면, 커다이어는 136이었고 브루스는 120이었다. 브루스는 30홈런-100타점을 내세웠으나 전체적인 공격 생산력은 추신수보다 많이 떨어져 수상을 놓고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 이치로 이후 없었던 대업, 김하성이 도전한다
김하성은 이미 골드글러브에서도 최종 후보에 올라있다. 2루수 부문에서는 니코 호너(시카고 컵스), 브라이스 스탓(필라델피아)과 경쟁한다. 유틸리티 부문에서는 무키 베츠, 그리고 대표팀 동료였던 토미 에드먼(세인트루이스)이 경쟁자다. 김하성이 좋은 성적을 거두기는 했지만 확신을 하기는 어려운 격전지다.
다만 수상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골드글러브 투표 방식 때문이다. 골드글러브는 현장 투표가 75%, 그리고 미국야구연구협회(SABR)가 집계하는 수비 지표(SDI) 25%를 더한다. 우선 SDI에서는 김하성이 시즌 막판까지 2루수 부문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25% 비중에서는 1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SDI 지표의 가장 마지막 업데이트는 8월 14일이었다. SABR은 골드글러브 투표에 연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매년 이 시점 이후로는 기록을 업데이트하지 않는다. 대신 골드글러브 수상자가 발표된 이후 해당연도 성적을 일괄 공개한다. 8월 14일 현재 김하성이 8.3으로 1위였고, 스탓이 6.4, 그리고 호너가 5.7로 3위였다. 스탓이 6월 이후 맹추격하기는 했지만, 남은 정규시즌 기간을 고려했을 때 김하성을 추월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평가된다.
현장 평가 75%도 호의적이다. 현장 투표는 각 구단 감독을 포함해 팀별로 6명의 코칭스태프가 투표에 나서며 소속팀 선수에는 투표할 수 없다. 결국 사람의 생각이 중요한 셈이다. 기록과 달리 사람을 마음을 일일이 열어볼 수는 없으니 이 75%는 오리무중이다.
그럼에도 김하성의 수상을 엿볼 수 있는 근거가 있다. 김하성은 지난 9월 미국 야구 전문 매체 '베이스볼 아메리카'가 발표했던 '2023 메이저리그 베스트 툴' 투표에서 내셔널리그 2루수 부문 최고 수비수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이 투표는 코칭스태프를 대표하는 각 팀 감독, 스카우트, 그리고 임원 등 현장에서 직접 야구를 지켜보는 이들을 설문 조사해 얻어낸 값이다. 김하성의 현장 평가가 굉장히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김하성의 실버슬러거 수상 가능성이 떨어지기는 하나 그래도 골드글러브와 실버슬러거를 동시에 수상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건 대단한 일이다. 아시아 선수 역상 실버슬러거와 골드글러브를 동시에 수상한 선수는 딱 하나, 스즈키 이치로다. 당장 아시아 야수 역사상 골드글러브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선수가 이치로 하나라 그렇기도 하다.
이치로는 데뷔 시즌이었던 2001년 리그 신인상과 MVP를 휩쓸었고, 당해 골드글러브와 실버슬러거까지 석권했다. 최고의 시즌이었다. 이치로는 이를 시작으로 경력을 통틀어 무려 10번의 골드글러브와 3번의 실버슬러거를 수상했다. 그중 동시 수상은 2001년, 2007년, 2009년까지 세 번 있었다. 낮은 확률이기는 하지만 김하성이 이치로의 당시 대업에 다시 도전하는 첫 번째 아시아 선수가 된 셈이다.
롤링스사가 주관하는 골드글러브는 우리 시간으로 11월 6일 오전 8시 30분부터 순차적으로 수상자가 발표된다. 골드글러브 수상자 중에서도 '최고'를 가리는 플래티넘 골드글러브 수상자는 11월 11일 발표된다. 루이빌 슬러거사가 주관하는 실버슬러거는 11월 10일 오전 7시부터 수상자 발표에 들어간다. 김하성의 이름이 불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