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G 최정 '468개 홈런 쳤지만 이승엽 감독님 넘는다고 생각 안한다'
그런 적은 처음이었다고 했다. 타석에서 공 하나 바꾸는 것도 ‘나 때문이구나’ 하고 신경이 쓰이기는 처음이었다. 힘이 잔뜩 들어갔다. 빨리 해치우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최정(37·SSG)은 그런 성격이다. 늘 자신을 낮추고 화려하게 빛나는 데는 아무 신경을 쓰지 않는다. 주목받는 것보다 조용히 내 할 일 하는 게 편한 성격이다. 그 성실함과 무던함이 가장 큰 무기인 최정은 결국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다 홈런 타자의 자리에 올랐다.
최정은 16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KIA전에서 통산 467호 홈런을 때렸다.
3-4로 뒤지던 9회말 2사후 KIA 마무리 정해영을 상대로 좌월 솔로홈런을 터뜨렸다. 4-4 동점으로 팀을 구한 이 홈런은 최정의 시즌 9호 홈런이자 통산 467호 홈런이다.
KBO리그 통산 최다 홈런 기록 보유자인 이승엽 두산 감독의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이승엽 감독이 10년 넘게 혼자 지켜오던 KBO리그 최다 홈런 타자 자리에 이제 최정이 어깨를 나란히 했다. 최정은 1개를 더 치면 이제 홈런의 상징인 이승엽을 넘어 한국 프로야구 사상 가장 홈런을 많이 친 타자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최정이 지난 14일 KT전에서 홈런 2개를 몰아쳐 최다 홈런 타이 기록에 1개 차로 성큼 다가서자 분위기는 달라졌다. 이날 KIA전을 앞두고는 SSG 구단도 최정의 대기록을 위한 준비로 분주했다. 나올지 안 나올지 알 수 없는 기록이었지만 모두가 최정의 홈런을 준비했다.
최정은 “주변에서 괴롭히는 기분이 들었다”고 웃었다. 큰 부담이었다. 최정은 이날 1회말 2사후 유격수 플라이, 3회말 1사후 우익수 플라이, 5회말 1사후에는 삼진으로 돌아섰다. 최정답지 않은 타격, 원인은 대기록에 대한 부담이었다.
최정은 “많이 부담됐다. 일단 첫 타석 들어갔는데 공을 교체하길래 ‘뭐지’ 했는데 두번째 타석에서도 바꾸는 걸 보고 ‘이거, 홈런 기록공 때문에 그런 거구나’ 생각하니까 부담이 됐다. 거기다 (KIA 포수) 김태군이 ‘온국민이 지금 이 홈런에 관심 갖고 있습니다’ 막 이러는 거다. 경기 전부터 기록 달성했을 때 세리머니 어떻게 한다고 (구단이) 브리핑도 하고 해서 많이 부담이 됐었다”며 “나의 존을 지키면서 좀 냉철하게 타격을 했어야 되는데, 특히 (5회) 장현식 상대할 때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나도 모르게 욕심이 나서 돌렸는데 유인구에 헛스윙하고, 거기서부터 갑자기 영점이 사라졌다. 그냥 투수밖에 안 보였다. 결국 유인구에 삼진 당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계속 수비 나가고 했는데 그래도 안타 나오면서 마음이 편해졌다”고 털어놓았다. 최정은 7회말 2사후 네번째 타석에서야 KIA 전상현을 상대로 첫 안타를 쳤고, 그 다음 타석이었던 9회말 2사후 홈런을 쳐냈다.
최정은 고졸신인이었던 2005년 5월21일 인천 현대전에서 첫 홈런을 쳤다. 데뷔 첫해에는 이 홈런이 유일했지만 2년차였던 2006년 12개로 처음 두자릿수 홈런을 친 뒤 지난해까지 18시즌 연속 두자릿수 홈런을 때리면서 통산 최다홈런 타이를 달성했다. 역대 400홈런 이상을 친 타자도 이승엽과 최정뿐이다.
최정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도, 한국프로야구 홈런의 상징인 이승엽과 자신을 견주는 데 있어서는 한 발 뒤로 물러난다.
최정은 “정말 영광스러운 기록이지만 나도 해외리그에 다녀와서 이렇게 했으면 더 떳떳할텐데, 그런 점에서 (468호 홈런을 쳐서) 이승엽 감독님을 넘어선다고 해도 그게 넘어선 게 아니라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더 덤덤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승엽 감독은 2003년까지 9년을 삼성에서 뛴 뒤 8년을 일본에서 뛰고 2012년 돌아와 2017년까지 6년을 더 뛰었다. KBO리그에서 총 15년을 뛰면서 467홈런을 기록한 대단한 타자임이 분명하다.
최정은 올해로 데뷔 20년째를 맞는다. 단 한 번도 시즌을 거르지 않고 꾸준히, 연 평균 20개씩을 훌쩍 넘는 홈런을 쌓아오면서 기록을 달성했다. 대기록을 작성하고도 그 의미를 포장하려 하지 않는, 겸손한 사람이다.
이제 최정은 1개를 더 치면 정말 이승엽을 넘어 역대 가장 많은 홈런을 친 타자가 된다. 앞으로 홈런을 칠 때마다 기록이 된다. 그러나 마음은 이미 편해졌다.
워낙 부담 속에 이날 경기를 치른 최정은 “이제 됐다. 일단 경험을 했으니까 이런 느낌이구나 하고 경기하면 된다. 나는 기록을 깬다기보다는 그냥 빨리 이런 상황이 끝났으면 좋겠다. 빨리 해치우고 싶다는 마음뿐”이라며 “팀이 지고 있는데 갑자기 홈런 나오면 세리머니 하기도 팀에 미안할 것 같아서 그 상황만 되지 않으면 좋겠다”고 특유의 순박한 미소를 지었다.